us테니스오픈 US오픈 역사상 최고의 순간

 무려 4차례의 스매시를 로브로 받아내는 끈질김, 작은 기회를 엿보이자 포핸드로 반격, 짧게 떨어진 상대 발리를 전광석화처럼 따라가 백핸드 다운 더 라인 패싱샷.

하지만 이 장면의 진정한 묘미는 지미 코너스만이 보여줄 수 있는 폭발적인 세리머니에 있을 것이다. 바로 눈앞의 관중과 사진기자를 향해 날린 강렬한 어퍼컷 세리머니 두 방. 순식간에 테니스가 아닌 하나의 록 밴드 콘서트장으로 변모한 루이 암스트롱 스타디움(당시에는 아서 애쉬 스타디움이 없었다)의 열기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재현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전무후무한 전설의 장면이었다.1991년 US오픈은 미국 테니스 역사상 손꼽히는 기념비적인 대회였다. 39세 생일을 맞은 미국의 오래된 테니스 전설 지미 코너스가 역대 최고령 US오픈 준결승 진출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지미 코너스는 누구인가. 1970년대를 제패한 현대 테니스 최초의 정복자라고 부를 만하다. 1974년 세계 1위에 올랐으며 US오픈만 놓고 보면 샘프러스 페데러와 함께 다섯 번이나 최다 우승 기록 보유자다. 그보다 몇 살 아래인 동시대의 라이벌 비요른 보리와 존 매켄로가 등장하기 전까지 코너스는 오픈 시대 테니스의 수많은 기록을 보유한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1974년 한 해 동안 3개의 메이저 우승을 했고 세계 1위에 올라 160주 연속 왕좌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또 1978년까지 통산 278주 1위를 기록했으나 이 두 랭킹 1위 기록은 훗날 로저 페데러에 이르러 깨졌다.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독보적인 기록은 투어 통산 최다 우승(109승). 39세에 US오픈 준결승에 진출해 이 대회 역대 최고령 준결승 진출 기록을 갖고 있는 등 오랫동안 정상급에서 활약해 온 베테랑 대명사가 코너스다.

지미 코너스가 유행시킨 윌슨의 T2000 메탈 라켓은 기존 우드 라켓보다 더 정교한 컨트롤과 파워를 발휘해 라켓 테크놀로지의 본격적인 진화를 촉발했다.


지미 코너스는 크리스 에버트와 '챔피언 커플'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지미 코너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다. 1990년을 넘기면서 코너스는 심각한 손목을 다쳤고 그해 US오픈은 물론 메이저 대회를 모두 놓쳤다. 그래서 1991년 US오픈이 시작됐을 때 그의 순위는 어느새 세계 174위까지 추락해 있었다.
하지만 174위의 베테랑들이 그 대회에서 몰고 올 센세이션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회전부터 지미 코너스는 탈락 위기에 몰렸다. 위기만큼은 아니었다. 먼저 두 세트를 내주며 3세트나 브레이크해 0-3으로 뒤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대는 존 매켄로의 동생으로 세계 35위의 패트릭 매켄로(현재 ESPN 해설자)였다.
그러나 그 순간 지미 코너스는 훗날 자신의 자서전 아웃사이더에서 이렇게 결심했다고 털어놓았다. fuck! 홈에서 패트릭 매켄로 따위가 이기게 놔둘 수 없다며 포기하지 않는 근성의 승부사 코너스는 맹렬한 집념으로 매켄로를 물고 늘어져 기적 같은 3 대 2 대역전 드라마를 만들었다.
드라마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1991년 US오픈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16강전이 진짜 압권이었다. 자신의 연습 파트너이자 톱10에 오른 에릭 클릭스타인과 다시 한 번 피 말리는 5세트 승부를 벌였다. 마지막 5세트에서 코너스는 2-5로 벼랑 끝에 몰렸지만 다시 타이브레이크에서 승리하며 8강에 진출했다. 5세트 타이브레이크 시작을 앞두고 당시 중계 카메라에 다가와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돈 내고 테니스를 보는 이유라고 외친 코너의 여유와 배포도 압권이었다.
다시 한 번 기적의 승리 뒤 지미 코너스가 4강에서 만난 상대가 폴 하루히스였다. 코너스는 이 경기에서 첫 세트를 내줬지만 베테랑의 고집스러운 집념과 저력을 바탕으로 3-1 역전에 성공했다. 2세트 결정적인 브레이크 찬스에서 지미 코너스가 보여준 4번 로브와 백핸드 패싱샷, 그리고 테니스 역사상 오래 남을 어퍼컷 세리머니는 역대 최고령 US오픈 4강의 기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코너스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39세 생일 주간에 맞이한 2주간의 US오픈이었다. 비록 준결승에서 당시 절정의 기량을 보이던 짐 클리어와 맞붙어 패했지만 1991년 US오픈은 지미 코너스를 위한 대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코너스는 1996년까지 복식 선수로 활동을 계속했지만 전 세계 테니스 팬들에게 기억되는 코너스의 마지막 순간 마지막 춤은 1991년 US오픈이었다.코로나 팬데믹의 긴 터널을 지난 2021년 US오픈은 30년 전 그 열광과 환희의 순간을 다시금 만끽하는 듯하다. 무관중의 아쉬움이 그 어느 대회보다 컸던 만큼 뉴욕 플러싱 메도우의 떠들썩한 록 콘서트 같은 활기찬 분위기가 2년 만에 재현됐다. 그래서인지 관중의 열성적인 성원을 받은 젊은 10대 선수들이 잇따라 이변을 일으키고 있다.
근데 나는 이게 제일 궁금해. 노박 조코비치가 테니스 사상 남은 대기록을 달성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테니스장인 아서 애시 스타디움은 어떤 분위기가 될까. 또 조코비치가 지미 코너스의 어퍼컷 세리머니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전설적인 세리머니를 보여줄까. 30년 전 그날 밤 지미 코너스가 뉴욕의 밤하늘 아래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하는 모습을 보면 역시 US오픈은 나이터의 경기가 묘미라는 생각이 든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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